사랑한다며 매달리는 말에 왜냐고 묻는 목소리는 얼어버린 호수의 밑바닥처럼 차가웠다. 그는 누구라도 가차없이, 매정하게 그 밑바닥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 누군가가 얼어죽든 숨이 막혀죽든 그것은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으며 되려 에드윈이 즈려밟고 지나갈 길, 그러니까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제 눈앞의 상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어째서? 친구로서의 정을 착각하기라도 한 건지, 드디어 약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린 건지... .... 절박한 목소리였지만 에드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면 이용 가치는 슬슬 사라질테니 상대의 대답을 기다린다.

 

  "우리 손주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어요. 이번 Owl 성적 좀 보라니까요."

  "아이가 반장에 퀴디치도 한다면서요? 역시 순혈 아이는 뭔가 다르네요."

  찰나 떠오른 대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미 팍 늙어버린 가주, 할머님의 손길과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퍽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내놓으면 제 값을 하는 보석에 그 누가 어찌 함부로 손을 대겠는가. 비싼 것은 자랑스럽게 내보여야하지 않겠는가. 집안이 내보인 사랑은 그 뿐이었는지, 혹은 정말로 진심이었을지는 에드윈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진심이든 아니든 어릴 적부터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고, 익숙했다. 엇나간 것 하나없이 완벽한, 푸르게 빛나는 윈체스터의 순혈이었으니 에드윈 윈체스터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아야 마땅했다. '헛소리 하고있네. 순혈? 지랄하긴.'  티내지 않고 속으로 그런 말을 짓씹으며 웃어보이는 것도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으니까. 그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스스럼없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너 또한 마찬가지일테다. 그저 겉모습만 보았다면 네가 날 사랑할 이유는 없어. 제 아무리 남들에 비해 오래도록 곁을 내어주었다지만 사실을 알고나면 날 사랑하지 않을 이유만 있을 뿐이지. 순혈 주제에 그렇게 말해? 그 카데르가? 웃기지말라 그래. 누가 누굴 사랑하겠다고. 제정신이 아니니 분명 매달릴 것이 필요할 뿐일텐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며 닿는 시선은 파랗고 날카로운 보석같았다. 늘 머금고 있던 따스함 같은 것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이유같은 게 있을리가 없잖아."

  길게만 느껴진 차가운 침묵, 그것을 뚫고 나온 대답에 에드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눈커풀이 한번 움직이는 그 간극에 어느새 따스한 표정이 돌아왔다. 진심은 아니겠지. 또 다시 자신을 위해 얼굴에 가면을 썼을 뿐이다. 그래,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난 원래 너랑 같은 마음은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릭, 네가 그렇게 말하면 쉽게 거절은 못하는데... 알잖아.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너무 사람 마음 약하게 만들지마."

  손 끝으로 네 목에서 차갑게 빛나는 보라색의 보석을 매만졌다. 이것이 널 옭아낼테다. 벗어나지 못하고 나한테 매달리는 꼬라지는 좀 볼만하겠구나. 호수 아래로 밀어버리려던 손을 거두고 다시 천천히, 다정하게 손을 뻗는다.

  "그래도 나한테 사랑받으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지. 기회는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