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ICE
로벨리아 앨런은 꽃다발을 오래 손에 쥐고 있지 않는다. 아무리 동명의 아들에게 주는 것이라지만 졸업 꽃다발에 로벨리아라니. 악의가 철철 넘치는 건 아닐 테고 그냥 멍청한 거겠지. 꽃을 반쯤 내팽개치며 습관처럼 장갑을 다시 고쳐 끼려다, 아예 벗어버린다. 서랍을 열어 새 장갑을 꺼낸 로벨리아가 언제나와 같은 낯으로 방을 나선다.
소리 없는 발걸음이 계단을 지나친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면을 딛고도 기척 하나 내지 않는 것이 퍽 익숙하다. 그림자 진 검은 인영이 2층 복도 끝에 도달할 때까지도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피니트 인칸타템, 알로호모라, 델레트리우스, 리벨리오. 나직하게 뱉어진 주문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겹겹이 마법과 자물쇠로 둘러싸인 장소를 드러낸다. 벽면과 같은 색 문이 가볍게 열리고, 코트를 벗어 문가에 있는 의자에 걸쳐두고 나서야 다시 문이 닫힌다. 로벨리아는 꼭 닮은 이를 향해 돌아보며 웃는다.
"얌전히 기다리고 계셨죠?"
"……."
빛을 온통 흡수해 새까만 머리카락, 시야에 담기는 것에 별 가치 두지 않는 듯 무기질적인 눈동자, 창백할 만치 새하얀 피부, 온전하게 보존되어 광이 나지도 빛이 바래지도 않은 인영. 책으로 향해 있던 시선이 흘끗 돌아간다. 인사는 고작 그것뿐.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인사는 받아주지 않아도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니까. 로벨리아는 웃는 낯으로 그에게 조금 더 다가선다.
고요해진 주위가 입을 다문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문이 순순히 다시 벽면으로 스며든다. 색이 같은 문이 열 때보다 더 긴 주문에 의해 잠긴다.
로벨리아 앨런의 행색은 들어서기 전과 바뀐 것 없고, 안에서는 열어달라는 애원조차 들린 적 없다. 머리카락 한 올 빠지지 않을 만큼 꼼꼼하게 틀어묶은 로우테일이 걸음걸이를 따라 가볍게 살랑인다.
소리 없는 걸음이 멀어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 지인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