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망할.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쿠로코 세이메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생각했다. 일어날 기운도 의지도 없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일어날 의지가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기묘한 표정을 했던 것도 잠시, 여전히 눈을 뜬 채로 한숨을 내쉰다. 답지 않은 짓을 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다. 노이만, 그 중에서도 쿠로코 세이메가 판단 실수 따위를 하다니 지부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할 테다. 스스로도 그 순간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각성 수준으로 활성화된 두뇌가 감각에 잡히는 모든 걸 정보로 치환한다. 무너질 듯 아슬하게 흔들리는 구조물과의 거리가 약 4.7m, 근처에서 히이라기 지부장과 SoG가 교전 중, 주변 10m 내 바닥이 반파 상태로 복구가 불가피, 체온이 평소보다 낮고 맥박이 빠르게 뜀, 에너지 전량 소모… 리타이어에 가까워진 SoG를 히이라기 지부장이 놓칠 리도 없으니 잠시 몸에 힘을 빼도 괜찮겠지. 제어장치도 무사했고, 회복은 어렵지 않으니 눈을 좀 감고 있는다고 해서 별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생각한다.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 놓치지 않은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상태와 무관하게 흔들리지 않았던 초점, 스코프 안으로 보인 풍경, 그리고…
눈이 마주쳤던가?
일순 감은 눈꺼풀 안으로 동공이 푸르게 빛난다. 더는 손 하나 까딱일 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어딘가에서 쥐어짜낸 힘으로 총을 꽉 그러쥐었다가 힘없이 팽개친다.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올려 손으로 얼굴 위를 덮는다. 말로 정의하기 힘든 것들이 목 위로 울컥 차오른다. 며칠 전부터 두뇌 한 켠을 차지한 채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들이 슬금슬금 중앙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들어선다. 고전 흑백 영화처럼 기억이 재생된다. 온통 회색뿐인 세상에서 색채를 띠는 것은 누군가의 비명 뿐이다. 비명의 주인은 여럿이나 그들이 부르는 것은 단 한 명이다. 쿠로코, 쿠로코 대원, 쿠로코 세이메……
숨 쉬기가 힘들다. 턱 막히는 감각이 기분 나쁠 만큼 익숙하여 신물이 났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대신 얼굴 위로 덮은 손바닥에 힘을 준다. 똑같이 막아버리면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싶었지만 호흡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힘 주어 질끈 감은 눈 앞으로 총탄이 푸른 궤적을 그린다. 붉은색이 만연하고 그 시점에서 필름이 끊긴다. 더는 재생되지 않는, 무참하게 발 아래 놓인 것들을 내려다본다. 정말로 남은 것 한 톨마저 전부 긁어 쓴 모양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무력함만이 뇌리를 잠식한다.
그냥, 다 관두고 싶다…
평소의 쿠로코 세이메라면 생각만으로도 눈을 크게 떴을 법한 종류의 것이었으나 그는 지금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떠오르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자연히 밀려드는 정보를 쳐낸다. 사고가 뚝 끊긴 감각은 익숙지 않았고 어쩌면 공포스러웠으나 무엇도 이기지 못하는 감정이 있는 법이다.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이대로 누워 있으면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어 겨우 몸을 일으켜 웅크려 앉았으나 그뿐이다. 제 입에서 희미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이니, 저만치에서 익숙한 걸음소리가 들렸다는 사실을 알 리 없지. 눈 뜰 기운도 없어 감겨 있었던 눈꺼풀이 크게 부르는 목소리에 번쩍 뜨인다. 비명처럼 울렸던 목소리가 오버랩되어 머리가 아팠으나 고개를 든다. 아주 익숙한 음성이라.
뭐라고 했지, 지부장이 전부 듣고 있고 곧 여기로 올 거라고? 받아들인 소리가 웅웅거리며 울리는 탓에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 필요 없다 판단해 고개를 저었다. 수복은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금방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도착은 빨랐고 쿠로코는 그 시간 안에 ‘괜찮아 보일 만큼 상처를 수복’하는 데에 실패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넓은 등에 업혀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진다. 다정에 다시 목 아래에서 무언가 넘어올 것 같았으나 꾹 삼킨다.
어쩌면 그 정보가 쿠로코 세이메에게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이 사람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정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각성이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얼마나 끔찍한 일을 만들어냈는지 알고도 그대로 눈 감았을 수도 있을 테니까. 떠올리게끔 만든 건 그들이다. 예전 그대로였다면 아무렇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원망이 발 끝을 축축하게 적신다.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새까만 시선을 내리깐다.
혼자 있고 싶다, 지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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